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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지방 분권을 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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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6-04 08:10 조회58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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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지방 분권을 원하는 이유

Ryan McMaken, 2023. 07. 22 (황수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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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정치적 독립: 분리, 급진적 지방 분권, 그리고 더 작은 정체들에 대한 옹호론(Breaking Away: The Case for Secession, Radical Decentralization, and Smaller Polities)≫의 제4장이다. 지금 아마존(Amazon)과 미제스 창고(Mises Store)에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수십 년간, 많은 권위자, 학자, 그리고 지식인은 통신과 운송에서의 발전들이 미국 내 서로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게 특유한 서로 다른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특징을 제거할 것이라고 우리를 확신시켰다. 시골 정비공과 도시 커피 전문점 직원 사이 문화적 차이가 1900년에 그러했던 것보다 오늘날에는 더 작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전국 선거들은 지리가 미국 내 지역들 전체에 걸쳐 지배하는 많은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암시한다. 도심지들, 교외 이웃들, 그리고 시골 읍들은 전국적으로 거의 획일적이지 않은 일정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경제적 이익들의 특징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국만큼 큰 나라에서, 이것은 오랫동안 미국 생활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더 큰 국가들 같은 더 작은 나라들에서조차도, 대규모 다양한 주민을 통치하도록 설계된 국가적 정체를 창설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정치 이론가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동시에, 이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문제는 재산권들과 그 밖의 인권들을 정치 체제들이 가하는 남용들로부터 보호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자유주의―그것의 현대 변형,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포함한다―주창자들에게 특히 관심이 있었다.



국가의 성장과 지방 권력들의 쇠퇴


국가 권력의 문제에 관한 최상의 관찰자들과 비판자들 가운데는 19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부르봉 군주제 아래 절대주의가 상승하는 동안 그리고 프랑스 혁명 동안 이 중앙 집권화 과정이 전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1)


많은 이런 자유주의자는 프랑스 전체에 걸친 도시들과 지역들에서 역사적인 지방적 자율성이 프랑스 국가의 권력을 중앙 집권화하고 통합하려는 이런 시도들에 저항했었던 방식을 이해했다.2)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그 역사적 맥락을 ≪미국에서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설명한다.


현재 시점에 앞선 귀족주의 시대 동안, 유럽의 주권자들은 자기들의 권력에 내재하는 많은 권리를 박탈당했었거나 양도했었다. 백 년도 안 된 과거, 유럽 국가들 태반 사이에서, 수많은 사인과 자치 단체는 사법(司法)을 집행하고, 군대를 모으거나 유지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흔히 법률을 만들거나 해석하기조차 할 만큼 충분히 독립적이었다.3)


이 “두 번째 권한(secondary powers)”은 프랑스 국가가 보유한 중앙 집권적 권한의 범위와 통제를 넘어 수많은 정치권력 중심을 제공했다.4) 그러나 18세기 후기까지는, 그것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같은 시대에 유럽에는 많은 두 번째 권한이 존재했는데, 이것은 지방적 이익들을 대변했고 지방적 문제들을 집행했다. 대부분 이 지방 당국은 이미 사라졌다; 모두는 사라지는 데 혹은 가장 완전한 의존으로 빠지는 데 빠르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유럽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에 이르기까지 귀족 계급의 특권들, 도시들의 자유들, 그리고 지방 단체들의 권한들은 파괴되거나 파괴에 직면하였다.5)


이것은, 토크빌은 이해했다,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고 국가 주권자들의 승인과 조장 없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이 추세들이 프랑스에서 그 혁명으로 가속되었을지라도, 이것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았고, 더 큰 이데올로기적 및 사회학적 추세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국가는 모든 곳에서 이 자연적 주권 속성들을 자신에게만으로 다시 차지했다; 모든 정부 문제에서 국가는 자신과 국민 사이에 어떤 중간적인 대리인도 참지 않았고, 일반 업무에서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영향력으로 국민을 지도한다.6)


자연적으로, 중앙 국가가 대신 자기의 관료제를 통해서 그리고 중앙 집권적으로 통제되는 강제 기구를 사용함으로써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강력한 국가들은 매개자들을 통해 일해야 하는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국가들이 “지방적 주권(local sovereignty)”의 불편들 없이 지낼 수 있다면 이것은 주권적 권력이 자기 자신의 권력을 더욱더 완전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지방적 충성과 지방적 관습의 힘


국가들이 어떤 단일의 정치 중심에 의해서든 지배된다면, 사회 및 경제생활의 다른 중심들이 종종 반대해서 발생한다. 이것은 인간 사회가 본래 그 자체 아주 다양하기 때문인데, 특히 서로 다른 지역들과 도시들에 걸쳐서 그렇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로 다른 경제적 현실, 서로 다른 종교, 그리고 서로 다른 인구 통계는 광범위한 여러 견해와 이익을 산출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지지받는 이 습관들과 이익들은 다양한 종류의 지방적인 “전통(traditions)”을 만들기 시작한다.


벵자맹 콩스탕(Benjamin Constant)도 비슷한 결론들에 도달했다. 역사가 랠프 레이코(Ralph Raico)가 언급했듯이: “콩스탕은 자발적인 전통들, 즉 사회 자체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발생하는 것들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 콩스탕은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이 오래된 방식들의 가치를 강조했다.”7)


자기의 책 ≪모든 정부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의 원리들(Principles of Politics Applicable to All Governments)≫에서, 콩스탕은 자기 시대의 많은 자유주의자가,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아서, 법률들과 정치 제도들에서 획일성(uniformity)의 이상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불평한다.


이것은, 콩스탕은 경고한다, 잘못이고, 더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들을 창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은 그다음 획일성을 통해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몽테스키외가 생각한 바로 그 권리들을 침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치적 획일성은 매우 위험한 길들로 연결될 수 있다고, 콩스탕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큰 국가들이 인류에 대한 두통거리가 된 것은 모든 것을 획일성이라는 과장된 생각들에 희생함으로써이다,”8)라고 결론짓는다. 이것은 큰, 정치적으로 획일적인 국가들이 오직 국민에게 획일성을 강제하는 데 국가의 강제력을 사용함으로써만 이 수준의 획일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자기들의 지방적 전통들과 제도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러므로, 콩스탕은 계속한다:


같은 국민의 서로 다른 부분이, 모두 다른, 상황에 놓이고, 관습에서 길러지며, 장소에서 살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그들에게 비용을 끼칠 강제가 없이는, 절대적으로 똑같은 예절, 용법, 관행, 그리고 법률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9)


이것은 국민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지(worth it)”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권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지난 여러 세기 동안 국가들은 지방적 저항을 극복하고, 국가적 언어들을 부과하며, 국가적 제도들을 동질화하는 데 막대한 양들의 시간과 재보(財寶)를 썼다. 이 과정이 성공적일 때, 한 국가의 법률들은 결국 지배적인 지역이나 인구로부터의 사람들의 선호들과 관심들을 반영하고 그 밖의 모든 사람을 희생하게 된다. 더 큰 중앙 집권 국가에 관한 한, 콩스탕은 쓴다:


우리는 그것들이 가진 많고 심한 결점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의 크기 때문에 정부의 중심부에서 행동주의와 강압이 필요한데, 이것은 억제하기가 어렵고 폭정으로 타락한다. 법률들은 그것들이 적용되게 되어 있는 사람들로부터 아주 먼 지점에서 생겨서 그러한 거리의 불가피한 효과는 심각하고 빈번한 실수이다. 지방적 불의들은 결코 정부의 가슴에 도달하지 않는다. 수도에 두어져서, 그것은 전체 국가의 견해들 대신 그것의 주변 지역이나 기껏해야 그것의 거주 지역의 견해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지방적이거나 일시적인 상황은 일반법을 위한 이유가 되고, 가장 먼 지방들의 주민들은 자기들의 모든 계산과 자기들 이익의 모든 보호의 기초를 침식하는 예상치 못한 쇄신들, 부당한 가혹성, 성가신 규제들에 갑자기 놀라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완전히 낯선 사람인, 6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선동을 약간 알아챘거나, 일정 필요들을 간파했거나, 일정 위험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10)


콩스탕으로서는, 공동체들 사이 다양성은 해결돼야 할 문제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 권력에 대한 방벽으로서 여겨져야 한다. 게다가, 국가 권력의 한계를 논할 때 단지 개인의 자유들과 특권들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지방 제도적 독립도 역시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적 이익들과 기억들은, 정부가 그저 애석하게만 허용하고 그것이[정부가] 열심히 근절하고 싶어 하는, 저항의 원리를 담고 있다. 그것은[정부는] 개인들을 더욱더 재빨리 해치운다. 그것은 자기의 거대한 덩어리를 쉽게 그들[개인들] 위에, 모래 위에처럼, 굴린다.11)


궁극적으로, 이 지방 제도적 힘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콩스탕에게는, “제도들을 능숙하게 결합하고 그것들 안에 사람들의 악습과 약점에 대한 일정 균형추들을 두는”12) 것이 가능할 때 국가 권력이 성공적으로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크빌과 콩스탕의 소감은 후에 19세기에 비슷한 결론들에 도달한 구스타브 드 몰리나리(Gustave de Molinari)에 의해 되풀이되었다:


많은 측면에서 고대 관습들은, 그것들이 지배한 주민들에게 수 세기 동안 적응되고 실험으로 계속해서 완성되어, 개인의 자유에 훨씬 더 큰 영역을 남겼고 더 많은 형평을 가진 자유에 부착되는 책임을 확립했다.13)


그러나 몰리나리는 이 역사적 관찰들을 받아들여 대부분 프랑스 자유주의자보다 더욱더 급진적인 결론들에 도달할 것이다. “안전의 생산(The Production of Security)”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몰리나리는 “독점 정부(monopoly government)”라는 바로 그 개념을 매도했고, 정체들 사이 경쟁이 심지어 단일 영토 안에서조차도 이롭다고 결론지었다. 독점 권력이 지배할 때, 몰리나리는 쓴다, “정의가 비용이 많이 들게 되고, 느려지게 되며, 경찰이 성가시게 되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지 못하며, 안전의 대가가 남용되게 높고, 불평등하게 부과된다.”14)



미국 예: 독립 국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리나리의 더 급진적인 견해들은 소수파 입장이었다. 우리가 콩스탕과 토크빌의 연구에서 보듯이, 프랑스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더 큰 정치 실체 안에서의 지방 분권을 옹호하고 있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프랑스 국가−와 그 밖의 국가들−는, 비록 국가의 권력을 상당히 지방 분권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을 어떤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자유주의가 의미 있는 정치적인 힘이 되었을 때까지는,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훨씬 더 급진적인 형태로, 자기들 자신의 지방 분권 예, 즉 대영 제국으로부터 미국 식민지들의 분리를 이미 제공하고 있었다.


내부적 지방 분권이라는 프랑스 자유주의 예와 대조적으로, 미국 예는 완전한 분리의 예였다. 이 경우 최종 게임은 완전하게 독립된 국가−혹은 독립 국가들의 집단−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것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철학은 미국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 선언서−주로 토머스 제퍼슨이 썼다−의 본문에서 아주 명백하다. 주장은 간단하다: 보편적인 인권들이 중요하고, 정체들은 오직 그것들이[정체들이] 그런 권리들을 보호하도록 의지할 수 있을 때만 정당하거나 소중하다. 만약 한 정체가 이 권리들을 침해한다면, 그 정체와 관계를 끊어 독립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북아메리카에서 단일 연합을 형성하는 쪽으로 점차 움직였던 바로 그때, 그들은 이것이, 많은 더 작은 회원국 사이에 정치권력이 더 널리 퍼진, 지방 분권 국가가 되도록 확실히 하는 데 정성을 들였다. 원래 고안되었을 때는, 중앙 정부는 아주 약하게 되어 있었다. 상비 연방군은 없게 되어 있었고, 대부분 지상 군사력은 회원국들이 통제하는 민병대들의 수중에 있게 되어 있었다. 지방 의회들과 지방 법원들이 정부 행정의 압도적 다수를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연방 권한은 회원국들의 더 신축성 있는 권한과 비교하여 엄격하게 제한되게 되어 있었다. 


특히 더 지방 분권적인 생각을 가진 미국 혁명가들−제퍼슨과 많은 “반연방주의자(Anti-Federalists)” 같은 사람들인데, 이들은 권리 장전이 없는 새 헌법의 비준을 반대했다−사이에서, 지방 관습들과 지방 제도들이 새 국가 정부에 의한 권력 남용에 대해 장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15)


이 이데올로기는 영속적으로 연방 권력을 의심한 제퍼슨주의자들과 잭슨주의자들 아래에서 또 한 세기 동안 계속해서 정치적인 힘이 될 것이다.16)



쇠퇴하는 자유주의 지방 분권


그러나 오늘날, 중앙 정부들에 의한 침입으로부터 지역 권력과 관습을 보호하려는 자유주의 노력들은 매우 쇠퇴하고 있다. 그것이 유럽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공격들이건, 혹은 미국에서 소위 “주들의 권리들(states’ rights)”의 규탄들이건, 지방 통제와 자결에 대한 심지어 제한되고 약한 호소들조차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권위자,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으로부터의 모욕에 봉착하고 있다. 토크빌과 콩스탕 두 세기 후, 정체들은 여전히 지방 분권을 위협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들[정체들]은 옳다. 지방 분권은 국가 권력에 대한 위협이다. 자유주의 전통에서 정치권력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이 논문은 ≪정치적 독립: 분리, 급진적 지방 분권, 그리고 더 작은 정체들에 대한 옹호론(Breaking Away: The Case for Secession, Radical Decentralization, and Smaller Polities)≫의 제4장이다. 지금 아마존(Amazon)과 미제스 창고(Mises Store)에서 이용할 수 있다.]


[더 읽으시라: 라이언 멕메이컨에 의한 “분리주의적 프랑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 몰리나리와 두노이어(The Secessionist French Classical Liberals: Molinari and Dun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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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 라스바드도 역시 프랑스 절대주의의 발흥을 지방적 통제와 지방적 특권들에 대한 공격으로서 보았다. Ryan McMaken, “Medievalism, Absolutism, and the French Revolution,” Mises Wire, July 12, 2019를 보라.

2) 많은 자유주의자가 또한 권력의 중앙 집권을 지지하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에 관해서 외르크 귀도 휠스만은 쓴다: 귀족적 특권들을 제거하기 위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더 작은 귀족들에 대항해 왕을 지지했고, 그다음에는 군주제와 귀족제의 모든 지역적 및 지방적 형태와 싸우기 위해 추가적인 권한들을 민주적 중앙 국가에 집중했다. 정치권력을 억제하기보다, 그들은 단지 그것을 이동했고, 중앙 집권화했으며, 그들이 지위를 빼앗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던 것들보다 더욱더 강력한 정치 제도들을 창설하였다.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단기 성공들을 매우 부담스러운 장기 연금 지급 의무들을 가지고 샀는데, 그것들 중 약간을 우리는 20세기에 치렀다. ... 새 민주적 중앙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전 영토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모두 함께 실현하는 데 이 “기법”이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것 없이는, 이 과정은 점진적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구체제의 섬들이 매우 오랫동안 살아남았었을 것이라는 점을 함축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단순한 기법처럼, 이것은 결국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에 등을 돌렸을 양날의 칼이었다. Jörg Guido Hülsmann, “Secession and the Production of Defense,” in The Myth of National Defense, ed. Hans-Hermann Hoppe (Auburn, Ala.: Mises Institute, 2003), p. 380을 보라.

3) Alexis de Tocqueville, Democracy in America, vol. 2, bk. 4, chap. 5, https://en.wikisource.org/wiki/Democracy_in_America/Volume_2/Book_4/Chapter_5.

4) 전(前)절대주의 및 전근대 정치 제도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들이 종종 자기들의 관할 안에서 독점력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즉, 권력은 종종 국가 주권자와 지방 당국 사이에 공유되었고, 정부는 중앙 당국으로부터의 법령에 의한 통치보다 합의 모형에 훨씬 더 의지했다. Luigi Marco Bassani and Carlo Lottieri, “The Problem of Security: Historicity of the State and ‘European Realism’,” in The Myth of National Defense, ed. Hans-Hermann Hoppe (Auburn, Ala.: Mises Institute 2003), p. 35를 보라.

5) Tocqueville, Democracy in America.

6) 상게서.

7) Ralph Raico, Classical Liberalism and the Austrian School (Auburn, Ala.: Mises Institute, 2012), p. 225.

8) Benjamin Constant, Principles of Politics Applicable to All Governments, tr., Dennis O’Keeffe, ed. Etienne Hofmann (Indianapolis, Ind.: Liberty Fund, 2003), https://oll.libertyfund.org/title/constant-principles-of-politics-applicable-to-all-governments.

9) 상게서.

10) 상게서.

11) 상게서.

12) alph Raico, “Great Individualists of the Past: Benjamin Constant,” New Individualist Review (Indianapolis, Ind.: Liberty Fund, 1981), https://oll.libertyfund.org/page/raico-on-benjamin-constant.

13) Raico, Classical Liberalism and the Austrian School, p. 242에서 인용.

14) 상게서, p. 239.

15) 수정 제14조 이전에는, 권리 장전은 연방 권력만 제한했고, 대부분 권한과 특권을 회원 주들이나 수정 제10조에 진술된 “국민(the people)”에 명시적으로 유보했다.

16) 라스바드는, 대개 잭슨주의자들에 의해 통제된, 19세기 민주당을 진정한 자유방임 자유주의 정당으로 여겼다. 이것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근본적으로 그 당의 이데올로기적 정향을 자유방임에서 멀게 바꾼 1896년에 끝났다. Murray N. Rothbard, “1896: The Collapse of the Third Party System and of Laissez-faire Politics,” The Progressive Era, ed. Patrick Newman (Auburn, Ala.: Mises Institute, 2017), p. 163.



글쓴이) 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컨(@ryanmcmaken)은 미제스 연구소 선임 편집인이다. ≪미제스 와이어≫와 ≪권력과 시장(Power and Market)≫에 싣도록 그에게 당신의 논문 제출물을 보내시라. 그러나 먼저 논문 지침들을 읽으시라. 라이언은 콜로라도 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에서 경제학 학사와 공공 정책 및 국제 관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콜로라도주를 위한 주택 경제학자였다. 그는 ≪정치적 독립: 분리, 급진적 지방 분권, 그리고 더 작은 정체들에 대한 옹호론(Breaking Away: The Case for Secession, Radical Decentralization, and Smaller Polities)≫과 ≪공산당원 카우보이들: 서부극에서 부르주아 계급과 국민 국가(Commie Cowboys: The Bourgeoisie and the Nation State in the Western Genre)≫의 저자이다.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원문) https://mises.org/wire/why-classical-liberals-want-decentr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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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지방 분권은 노동분업을 통한 전문화를 부른다.
1.미제스는 인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노동분업을 통한 일의 전문화가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2.지방분권은 노동분업을 통한 전문화를 나타낸다.
3.리카도는 비교우위를 통한 전문화를 통해서 더 많은 생산성을 가지고 옴을 그의 책에서 드러냈다.
4.지방분권은 하나에 전문화할수 있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5.서울은 서비스와 상품을 전문화해서 지방에 보낸다.
6.각 지방들은 쌀농사와 각종 야채와 과일들을 생산해서 서울로 보낸다.
7.그리고 원자력 발전소를 지방에 지어서 에너지를 만들어서 서울로 보낸다.
8.서울은 각종 인재들을 잘 양성해서 지방과 서울에 배치한다.
9.이러한 지방분권은 비교적 자신이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를 나누고 비교우위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전체 대한민국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10.중앙 집중화만 있다면 이러한 노동분업을 통한 전문화는 불가능하며 대한민국의 생산성을 퇴보하게 만든다.
11.지방분권이 중앙집중보다 좋은것은 자신의 비교우위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하게 만드는데 있다.
12.리카도의 비교우위를 지방분권과 중앙집중에 적용해보면 지방분권이 노동분업과 전문화를 불려와서 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함을 기억하라.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도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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