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스의 행동 공리의 천재성 > 미제스에세이

본문 바로가기
미제스에세이
  • 전체보기

미제스의 행동 공리의 천재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5-28 06:54 조회448회 댓글1건

본문

미제스의 행동 공리의 천재성

Per Bylund, 2020. 10. 06 (박종운 옮김)



c6dd6ecd635d301be3b006d8c5e1d477_1716846521_0035.jpg

행동 공리는 미제스의 경제학 방법론(praxeology, 인간행동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점 훨씬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얼핏 추적해낼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문제를 풀어주고 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경제적 사고법을 인간행동학(praxeology)으로 구체화했을 때, 그 자신은 그것이 카를 멩거(Carl Menger)의 선구적인 이론적 작업을 명확하게 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멩거는 그 다음에는 자신의 저작을 전통적인 논리적 경제 추론 위에 두었다. 미제스 자신으로서는 인간행동학이 야단법석을 일으키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 그 야단법석은 주로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학파 안에서도 일어났다. 그 한 예로, 하이에크는 그 위에 온전하게 올라타지 못했기 때문이다.<1> 


미제스는 경제적 사고가 인간 행동에서 시작한다고 설정했다. 그리고 우리가 본능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합목적적으로 행동한다고 했다. 인간이 행동할 때, 그는 마음속에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시도한다. 이 무엇인가는 주로 맞서거나 아니면 도피하는 본능(fight-or-flight instincts)에 의해 동기부여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흔히,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달성할 수 있다고 상상해 왔던 그리고 우리에게 가치 있다고 상상해 왔던 무엇인가의 달성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합목적적 행태로서의 인간의 행동은 미제스 류의 인간행동학의 근본적 가정인데, 이것이 행동 공리(action axiom)로 알려져 왔다. 이 공리로부터 우리는, 다 함께 경제 이론의 본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경제적 진리들을 연역할 수 있다. 그 명제는 완벽하게 연역적인 것이다. 그 출발점은 그 자체로, 그것에서 온 논리적 추론으로 다른 진실 명제들을 정립할 수 있게 하는, 진실한 명제다. [연역법이라는-옮긴이 삽입] 그 방법론은 그 자체로 특기할만하거나 도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사용해왔던 추론법과 같은 유형의 것일 뿐이다.[역주1] 


그러나 행동 공리는 그릇된 방식으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경제적 사고가 인간의 행동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가? 일부에서 주장하기를, 이는 불필요하다고 한다. 즉 그 행동 공리는 “선택하는 것(choice)”이고, 미제스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주장하기를, 그것은 흠결이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그 비판은 과녁이 엇나간 것이다. 미제스는 인간의 행동을 근본적 공리라고 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곤란을 겪었을 많은 문제들을 풀었기 때문이다. 행동(action)이야말로 가치-주관적 경험-와 측정 가능한 객관적 세계 사이에서 잃어버렸던 연결고리(missing link)였다. 



주관적 가치


모든 경제학자들은 가치가 정말로 주관적이라는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이것을 그 사실에 대해 입발림으로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근본적 진리에 역행해서 행동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주관적 가치는 측정 가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치를 실제로 감지하는 개인 말고는 그 누군가가 관찰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적 공식이나 통계 모델들에서 변수들이 그것을 충실하게 표현될 수 없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아닌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효용단위(utility unit)들이 정해져 있고 따라서 이를 계산해 낼 수 있는 – 옮긴이 삽입] 효용 함수들(utility functions)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assume)” 있다. 그들은 이 함수들로부터 이 효용들을 어떻게 극대화할지를 계산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오스트리아 학파에게는 이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불필요하기도 한 가정이다. 주관적 가치는 만족에 대한 인간적 느낌이라고만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학파는 가치가 좋은 것들(goods)과 서비스들을 소비하는 (사용하는) 행동에서 드러난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 가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용하고 만족을 느낄 때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음식을 먹는 가치는 허기를 피하게 하는 것이거나 단순히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맛을 즐기는 것은 어떤가? 꾸준히 좋은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한 만족은? 아마 음료와 함께라면, 그리고 즐거운 친구들 사이에서라면? 이 전체 경험이 가치인 것이다. 완전히 인간적 의미에서 그렇다. 그것은 측정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얼마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지와 상관없이, 그것은 1달러의 가치에 배속될 수 없다.    


가치를 가지는 어떤 것의 경우에, 소비자 측에서는 단순히 만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어떤 것이 필요하다. 즐겨지는 것도 또한 희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보다 그것이 적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만족은 이러한 희소성(scarcity)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당신도 만일 갈비뼈 스테이크(ribeye steak)가 프레첼 과자들(pretzels)처럼 흔한 것이라면 그것이 그렇게 높게 가치 평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 1 달러의 내기를 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주(珍珠)들이 하늘에서 정기적으로 떨어졌다면 우리가 과연 진주들로 우리를 장식했을까?


150년 전에 카를 멩거(Carl Menger)는 자신의 초석 격인 대작(magnum opus)에서 가치가 주관적인 것임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주관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건 그것은 만족에 기여하여야 할 뿐 아니라(혹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원하는 것을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용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적은 양으로만 존재해야 한다(그것은 희소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껴 써야 하는(economize) 이유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자원들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만족(가치)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현안은 물론 우리가 계속해서 만족이라는 인적인 느낌(personal feelings)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좋은 것들(goods, 재화)을 생산하고 그들과 거래한다. 선진 경제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좋은 것들을 간접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화폐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측정될 수 없는 것인, 개인적 느낌들의 논의로부터 화폐를 사용하여 사고파는 좋은 것들 및 서비스들이 있는 시장으로 가는 길을 닦는가? 이 지점이 미제스의 행동 공리가 천재적인 해법을 제공한 곳이다.



잃어버린 고리


행동 공리(action axiom)가 이 문제를 풀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에너지를 밖으로 향할 수밖에 없게 하기 때문이다. 행동은 자연이 제공해 준 것을 사용하며, 그 결과로 자연에서의 객관적(objective) 변화들을 창출한다. 결국 행동은 우리가 물리적 세계(physical world)에서 구현할(manifest) 수 있다고 보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정의된다. 


인간의 행동은,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원하는 것들(wants)’을 충족시키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순수하게 주관적인 후생(purely subjective well-being)을 창출하는-, 기대된 혹은 상상한 상태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에서 객관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춥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옷이나 휴식처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행동을 한다. 


우리가 창출해냈던 가치는 오로지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 그리고 우리가 달성하고자 애쓰는 엄밀한 가치는 우리 자신의, 또한 순수하게 주관적인, 서로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서열 매기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은 그 자체로,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를 성취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인데, 객관적 세계에서 구현되었다. 마음이라는 세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꿈일 뿐이다. 꿈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 말이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동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이 그 자체로 의도대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흔히 그 반대가 진실이다: 행동들은 의도치 않은 결과들로 이어진다. 실종되는 것도 예외 없는 법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존하고 있다. 상황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서부터, 잘못된 수단을 선택하는 일까지 – 그리고 심지어는 잘못된 목표를 선택하는 일까지. 그러나 우리가 의도한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게 하고 의도치 않은 목표들도 이롭게 하는 길을 발견하고 소통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action) 안에서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일을 삼가는 법을 배우는가도 그 안에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모든 단일 행동들이 결과들을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인간이 객관적 세계에서 다소 연관되어 있는 변화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합목적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을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도 행동이라고 –그리고 유일하게 행동뿐이라고- 주장한다.


행동은 현실에서는 결과들을 낳는다-그리고 낳을 수밖에 없다. 행동은 그 자체로 그리고 그 결과 면에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다. 우리가 좋은 것들(goods) 및 서비스들을 생산하기 위하여 희소한 자원들을 사용하는 것은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행동공리의 절대적 천재성은 그것이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현실 사이의 연결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행동은 현실의 변화를 지향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치 있는 상황을 창출하는 것을 지향한다. 행동은 행동하는 사람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하다고 여기는 수단을 사용한다. 선택들(choices)은 개인들이 내적으로 계산한 주관적 가치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 동물의 가죽은 따뜻하게 지내기 위하여 의복을 만드는 수단으로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죽들은 목재들과 함께 휴식처를 세우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최상의 가치로 귀결될까? 의복인가 아니면 바람막이인가? 둘 중 어떤 것이 주어진 비용(가죽과 목재)으로 최상의 가치를 줄까? 의복인가 아니면 휴식처인가?


우리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직접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객관적 자원들을 경제적으로 사용함으로써다. 우리 동료 인간들에게 무엇인가의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지, 우리의 꿈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이 ‘가치 있는 원하는 것(valuable wants)’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을 창출하기 때문이고, 우리의 행동이 그 외의 다른 것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자원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객관적 현실 위에 표시되는 것은 행동을 통해서인 것이다. 이것이 왜 행동 공리가 경제적 사고를 위하여 다른 것으로는 바꿀 수 없는 발진 기지(launch pad)인가 하는 이유다. 



...........................................................

<1> https://mises.org/library/hayek-and-departure-praxeology


[역주 1] 미제스는 인간행동학을 이야기하면서 수학적 교환학을 비판하고 논리적 교환학을 주장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교환학으로서의 인간행동학을 논리학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행동은 변화를 지향하며, 그래서 시간적 질서 속에 있”으며, “변화는 인간행동학의 구성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식론적으로 인간행동학 체계를 논리학 체계와 구별해주는 것은, 인간행동학 체계가 시간과 인과성의 범주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논리학의 “연역 체계 자체는 시간의 범주와 인과성의 범주 그 어느 것도 내포하지 않는다. 요소들 사이에는 기능적 상관관계가 있지만, 원인도 결과도 없다.”(MISES, Ludwig von, (1996). Human Action, 4e. Fox & Wilkes (민경국; 박종운 옮김. 인간행동, 1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5장 시간) 그래서 인간행동은 인간의 가치판단, 합목적성의 연역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치판단이 달라질 때 혹은 주변 상황이 달라질 때, 인간행동이 과거와 동일한 목적으로 혹은 동일한 수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의 변화 반영 여부가 인간행동학과 논리학이 구별될 수 있는 지점이다. 



글쓴이) Per Bylund

퍼 빌런드 박사는 미제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Spears 경영대학원 내 기업가다움 대학원(School of Entrepreneurship)의 기업가다움 조교수 및 조니 포프 기념 석좌(Johnny D. Pope Chair) 교수다. 그리고 스톡홀름의 라티오 연구소(Ratio Institute)의 보조연구원이다. 그는 이전에는 베일러 대학교와 미주리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빌런드 박사는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 계간지(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및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평론(Review of Austrian Economics)》 두 곳 뿐만 아니라, 기업가다움 및 경영 두 방면에서 최고의 학술지들에도 연구결과물을 출간하여왔다. 그는 다음 세 권의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입문서(How to Think about the Economy: A Primer)》,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실현되지 않은 것: 규제들은 어떻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나(The Seen, the Unseen, and the Unrealized: How Regulations Affect our Everyday Lives)》, 그리고 《생산 문제: 새로운 기업 이론(The Problem of Production: A New Theory of the Firm)》. 그는 다음 책들도 편집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에 대한 현대적 안내서(The Modern Guide to Austrian Economics)》, 그리고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의 다음 세대: 조셉 살레르노를 기리며(The Next Generation of Austrian Economics: Essays In Honor of Joseph T. Salerno)》


옮긴이) 박종운(자유시민연합 사무총장, 경제사)


원문) https://mises.org/wire/genius-misess-action-axiom



미제스에세이와 각종 안내를 정기적으로 받고자 하시는 분은 메일링서비스를 신청해주세요.

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연역적 행동 공리와 가치 창조.
1.수학처럼 미제스는 연역적 공리를 인간행동에 적용하고 있다.
2.그러나 모든 연역적 공리가 고정된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다.
3.주관적인 가치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한다.
4.미제스는 희소성이 경제적 재화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5.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희소성 역시 주관적 가치의 부여이지 절대적 물리량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하늘에서 진주가 쏟아지면 그 진주는 경제적 재화가 될수 없다고 주장한다.
7.그러나 소비자들에게 그 하늘에서 쏟아진 진주를 잘 가공하고 주관적으로 희소성을 부여하게 잘 만들어서 판매한다면 그 재화는 경제재가 된다.
8.즉.절대적 물리량이 희소해서 경제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희소한 가치를 가진다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때에 그 재화는 경제재가 되는것이다.
9.주관적인 가치는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진주는 측정가능하고 절대적 물리량이 존재한다.
10.그러나 아무리 절대적인 물리량이 희소하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충분하다고 의미를 주관적으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 재화는 경제재가 되지 못한다.
11.반대로 아무리 물리적으로도 풍부하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자신들에게 부족하며 희소한 주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 재화는 경제재가 된다.
12.이러한 점을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놓친것 같다.
13.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것이 아니듯이 경제재가 되는 것도 절대적 물질적 양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14.소비자들이 그 재화에 부여하는 주관적인 가치로 의미를 부여해서 경제재냐?  경제재가 아니냐?가 구분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김도헌 올림.

  •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