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이론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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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6-06-09 05:36 조회194회 댓글1건본문
자본 이론과 자유
Eduard Braun, 2026. 05. 08. (권혁철 옮김)
20세기의 파국적인 사회주의 실험들은 자본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경제학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본 이론이 그 핵심에서 자유와 비자유(freedom and unfreedom)의 문제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전통 속에서 이 문제들을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 이론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 자본에 대해 경제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자장가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이론 자체가 따분할 뿐만 아니라, 그 따분함은 지난 175년 동안 자본이라는 개념과 그에 대한 해석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대하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역할을 해왔는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구 사회에서 자본이라는 개념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 이는 주로 사회주의의 대두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자본은 지배의 도구이자, 비자유(unfreedom)의 상태, 자유가 결여된 상태의 현상이다. 카를 마르크스(K. Marx)는 이를 『자본론』 제1권에서 상세히 전개했다. 자본가 계급, 즉 자본의 소유자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마르크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잉여가치는 노동자들에 의해 창출된다.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본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장을 가진 장인과는 달리, 자신의 노동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생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지만, 노동자들이 창출한 잉여를 모두 보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그것을 스스로 창출하지도 않았고 또 그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음에도 생산의 잉여가치를 차지한다. 요컨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 계급은 자유롭지 못하고, 불리한 처지(disadvantage)에 놓이며, 모욕을 당한다. 모두를 위한 자유를 원한다면, 사적 자본은 폐지되어야 한다.
자본에 대한 이 비판은 수백만 명을 매료시켜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자본이 착취하는 역할을 한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수많은 사회주의 실험이 전 세계에서 수행되었다. 이러한 실험들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미 1997년에 그 희생자 수는 약 1억 명으로 추산되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자본이라는 현상을 탐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작업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이 학문 분야는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아야 할 것이고, 이와 관련된 이론적, 실천적 문제들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해야 할 것이다.
외부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주류 경제학 커리큘럼에는 이런 내용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부전공을 하는 학생들은 카를 마르크스와 마주할 기회가 전혀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의 입장이 자세히 제시되지도 않으며, 체계적으로 맥락화되거나 반박되지도 않는다.
경제학자라면 당연히 자본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시경제학, 특히 성장 이론에서는 자본이 주된 관심의 중심에 놓이기까지 한다. 이런 분야들은 성장과 번영에서 자본이 지니는 장기적(long-term) 중요성을 다룬다. 그러나 표준 교과서에서는 위에서 개괄한 사상, 전개, 그리고 재앙들과 관련된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자본(capital)”이라는 단어에는 경제학자들이 사회주의가 제기한 문제들을 비켜 갈 수 있게 해주는 의미가 부여된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자본은 노동과 나란히 동등하고 조화로운 위치에 서 있는 하나의 생산요소로 소개된다. 자본은 기계, 설비, 도구, 건물, 그리고 이와 유사한 생산된 생산수단(produced means of production)으로 구성된다. 노동이 생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도 그러하다. 그리고 노동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똑같이 자본도 수익을 창출한다. 기술적으로 표현하면: 산출물 Y는 자본 K와 노동 L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생산된다. 자본과 노동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생산요소로서 동등한 수준의 위치에 놓인다. 이런 관계는 이른바 생산함수로 간결하게 나타낼 수 있다:
Y = F(L, K)
이런 공식과 내용들을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성장 이론(growth theory)은 사회주의 사상과 그 실행의 파란만장한 역사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반론들과 경험까지도 아무런 언급 없이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본을 기계, 공장, 도구, 건물 등으로 정의함으로써, 재산권의 구조와 소유관계가 생산의 과정이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K)과 노동(L)이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장경제에서 노동자는 통상 자본의 소유자나 관리자에 의해 고용된다.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끈질긴 근본적 공격의 대부분이 겨냥하는 곳이 정확히 이 지점이다.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 경제학은, 학생들에게 매우 흥미롭고 교육적일 수 있으며, 서구 사회의 일반 교양에도 중대한 중요성을 지니는, 이 주제를 무해한(harmless) 기술적 연습 문제로 변질시킨다. 자유와 비자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논하는 대신, 초점은 함수·미분·한계생산성과 같은 것들로 옮겨간다.
필자가 쓴 『자본과 자본주의(Capital and Capitalism)』에서 나는 경제학의 자본 이론에 대해 또 다른, 안타깝게도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접근법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접근법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가 제기한 문제들을 무시해 버리는 대신,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과 자본의 역할을 명시적으로 이해하고, 그것들을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구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본이 비자유와 억압의 도구라는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의 비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정면으로 대응한다.
출발점은 역사학파 경제학(Historical School Economics)이다. 이 학파는 이미 19세기에 자본주의 제도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탐구했다. 이 학파의 몇몇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은 경제 계산(economic calculation)의 결정적인 역할에 주목했다(이 제5장을 보라). 가능한 한 최대의 수익을 내도록 자본을 투자하려는 계산하는 기업들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업의 기적을 가능케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사회주의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계획경제는 분업을 합리적으로 조직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 Mises)는 20세기 초에 이와 매우 유사한 주장을 전개했으며, 그로써 잘 알려진 사회주의 경제 계산 논쟁을 촉발했다. 미제스도 그리고 역사학파 경제학도 자본을 하나의 생산요소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기업의 실제(practice)를 기준으로 삼아 자본을 수입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기업의 모든 자산의 화폐가치의 총합, 즉 건물, 토지, 기계, 권리, 특허, 유가증권, 현금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 대차대조표의 자산 측에 기재되는 모든 항목의 합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자본은 기업이 이윤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물적·비물적 수단을 화폐 단위로 표시한 척도(measure)이다.
특히 미제스는 자신의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이 정의를 상세한 자본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은 자유 사회의 핵심 제도들, 즉 사유재산, 시장, 기업가정신, 그리고 경제 계산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이론은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와 그 제도들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의미에서 자유론(theory of freedom)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왜 중앙계획경제가 결국 혼란으로, 독재로, 혹은 그 둘 모두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개인이나 노동 계급의 자유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제도 기반 이론(institution-based theory) 안에서는 일관된 수학적 모형을 구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이론은 첫째,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데―아마 이것이 핵심 과제일 것이다― 매우 적합하고, 둘째, 사회주의가 제기하는 비판을 다루고 이에 답하는 데도 적합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은 따분하지 않다.
글쓴이) 에두아르트 브라운(Dr. Eduard Braun)
에두아르트 브라운 박사는 독일 클라우스탈 경제대학교(Clausthal University of Economics)의 경영경제연구소(Institute of management and economics) 부교수이다. 그는 미제스 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그의 최신 저서 『자본과 자본주의(Capital and Capitalism)』는 자본과 경제 계산에 대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접근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capital-theory-and-liberty
옮긴이) 권혁철(자유시장연구소장,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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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노동도 자본이다.
1.노동도 엄밀히 말해서 일종의 자본이다.
2.자본은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이자 교환을 통해서 이룰수 있는 돈버는 수단이다.
3.자본가는 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있다.
4.자본가는 자본의 기업가이고 노동자는 노동의 기업가이다.
5.왜냐하면 자본가는 자본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6.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는 서로를 돕는 역할을 하는 소중한 친구관계이다.
7.자본이 많아지면 노동에 대한 생산성이 늘어나서 노동의 임금이 꾸준히 상승한다.
8.노동이 많아지면 자본의 가격이 내려가서 자본을 쉽게 구할수 있다.
9.미제스는 꾸준한 자본축적만이 노동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10.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중소기업들보다 일하기 편한것은 자본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11.이럴진데 자본가를 없애고 자본을 없애면 자본이 없는 북한처럼 자본가가 아닌 국가가 국민들에게 정당한 댓가없이 일을 부려먹고 한평생을 착취하게 된다.
12.만인은 한사람을 위해서 일하지만 한사람은 만인을 위하지 않는 독재정권으로 인권 유린과 강제노동을 시키고도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는다.
13.즉,독재정권을 위해서 만인이 서로 뜯어먹고 약탈하는 경제가 자본이 없고 자본가가 없는 세상이다.
14.자본가가 많이 받는것이 샘이 나고 부러우면 언제든지 노동자도 자본가가 될수 있다.
15.또한 자본가도 실패하면 노동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16.서로가 기업가인데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고 갈등과 반목만 하면 결국 자본가도 노동자도 서로 실패하고 망한다.
17.자본가는 노동자를 노동의 기업가로 존중해주고 노동자는 자본가를 자본의 기업가로 서로 배우고 존중하고 예우해줄때에 오랜기간 기업이 생존하고 서로 돈버는 수단들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돈을 벌수 있다.
18.서로 돕는 처지에 서로 예우하고 존중하지 않으면서 서로 싸우고 다투면 서로가 서로를 불필요한 사회나 국가가 된다.
19.자본이 없는 곳에 노동은 존재할수 없고 노동이 없는 곳에 자본이 존재할수 없다.
20.서로가 서로의 필요와 수요를 충족하여 주는 서로 돕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김도헌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