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해석 오류와 행운 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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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6-05-19 06:22 조회226회 댓글1건본문
행운 해석 오류와 행운 평등주의
Joshua Mawhorter, 2026. 05. 01. (박종운 옮김)
시장, 분업, 생산, 교환, 이윤에 대해−의도적이든 아니든−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은, 불평등이 악의적인 행위나 무작위적인 운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에, 불평등한 부와 소득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애덤 스미스의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조화를 가져오는-옮긴이 삽입] “보이지 않는 손”을 거짓이라고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무작위적인 행운이나 우연이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불평등하게 편익 및 손실을 분배하는 것이기에 더 큰 부와 소득을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행운이라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은 그것이 합목적적인 행동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에서 또한 결정적인 것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운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부를 불평등하게 분배했기 때문에, 국가라는 확연하게 보이는 손이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부를 재분배하기를 원한다.
로스바드는 그의 저서 《인간, 경제, 국가(Man, Economy, and State)》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썼다.<1> “자유 시장의 의사결정에 대한 보통의 비판은 소득 결정에 ‘행운’이 너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들이 행운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은 그 뒤에 그러한 결과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심지어 강압에 의해서라도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비약한다. 로스바드는 계속해서 말한다.<2> “시장이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 부당한 월계관을 수여한다고 고발하는 사람들은 그 뒤에 ‘부자’(또는 운이 좋은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또는 운이 없는 사람)을 보조하자는 호소로 나아간다.” 이러한 사람들을 행운 평등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H. Frank)는 그의 저서 《영향력 아래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3>
“성공한 사람들은 삶에서 사소해 보이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이 가진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시장에서 누리는 막대한 물질적 보상에 대해 과도한 권한 의식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행운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재능과 노력은 같았지만 거의 그들만큼 벌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신들이 한 행동의 결과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흔히 다음 세대에게 비슷한 기회를 만들어 줄 투자 자금용 세금 납부를 더 기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강조는 필자가 추가한 것임)
프랭크의 판단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정도와 재능이 개인들 사이에 모두 동등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그럼에도 결정적인 요소는 행운이다. 행운이 핵심적인 독립 변수로 처리되고 있으며, 그 행운이 없으면 성공은 실패로 된다고 주장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프랭크의 주장처럼, 행운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프랭크를 비롯한 행운 평등론자들이 무엇이 성공에 기여하는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일까?
또 다른 예로, 코헨(G.A. Cohen)은 그의 저서 《정의와 평등을 구제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4>
“평균 이상의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와 소득을 얻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심지어 그들의 노동이 재능이 덜한 동료들의 노동보다 더 생산적이고 가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누릴 자격이 없다. 나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확신은 … 불평등한 분배−그런 불평등은 (일부) 관련 당사자들의 몇몇 선택이나 잘못, 혹은 공적을 가지고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불공평하고, 따라서 그런 만큼 불의하다는 것이다. 또 [사후의] 어떤 조치로도 그런 특정한 불의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코헨과 다른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달리 입증될 때까지는 재산권, 부, 소득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며, 만족스러울 정도로 정당성이 입증될 때까지는 이들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행운 평등론자들의 주장에 있는 문제점들은 불확실성, 위험, 그리고 인간 행동에 대한 잘못된 이해, “행운”의 지식 문제 그리고 계량화가 어렵다는 본성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행운−그것이 존재하는 한−이 필연적으로, 행운 덕으로 돌려질 수 있는, 모든 성공이 부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가정과도 관련이 있다.
행운, 우연, 불확실성, 그리고 인간 행동
만약 “행운”이나 “우연”이나 혼돈이 인간 존재의 진정한 패러다임이라면, 그 경우에는 의미 있는 인간 행동이란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인간의 경험과 행동은 내재적으로 불확실성이 있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불확실성은 인간 행동에 필수적인 요소이다.<5> 그러나 불확실성과 우리가 흔히 "우연"이라고 부르는 미지의 변수들을 인정하지만, 인간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다른 어떤 미리 존재하는 현실들도 존재한다.
행동 공리에 잠재해 있는 일련의 전제들이 있다. 경제학(혹은 그 문제를 위한 어떤 학문이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 법칙<6><7>, 수단과 목적,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의미 있는 연결<8>, 귀납법<9>과 일률 원리(uniformity principle; UP; 자연법칙과 자연현상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일률적으로 작동한다는 원리), 논리의 법칙,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작동하는 불변의 법칙, 행위 결과의 불확실성과 나란히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측 가능성, 감각 기관을 통한 지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기억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마음과 신체의 연결, 물질적 요소들(자연적 과정에 따라 작동하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과 합목적적인 인간의 판단 및 행동 사이를<10> 구분하는 것<11> 등을 포함하여 이미 진실이라고 전제되어 있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여기서 이러한 전제들의 필요성과 그에 수반되는 인식론적 도전들에 대해 미제스로부터 가져온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이 규칙성이 없는 우주에서라면, 생각도 전혀 있을 수 없고 경험도 전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감지된 것 중에서 동일성(identity)을 인식한 것이거나 동일성의 결여를 인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건들의 분류(classification)를 향한 첫걸음이다. 만일 거기에 규칙성이 없다면 부류(class) 개념도 공허하거나 쓸모없게 될 것이다.<12>
인과성, 그리고 현상의 규칙성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추론이나 인간의 행동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세계는 인간이 당혹스럽게도 어떠한 방향성이나 길잡이도 찾을 수 없는 혼돈상태일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혼돈상태의 우주라는 조건들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13>
만일 우주가 혼돈이라면, 즉 사건들의 연속과 연쇄에 어떠한 규칙성도 없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 무한한 우연의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인지될 수 없을 것이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화경일 것이다. 인간이 어느 것을 기대할 가능성도 전혀 없을 것이다. 모든 경험은 단지 역사적인 것일 뿐이고 과거에 일어났던 것들의 기록일 뿐이다.<14>”
미제스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행동, 경험은 진짜 우연 혼돈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실제로 인간은 규칙성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진정한 무작위적 혼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는 행운의 문제와 연결되는데, 만약 행운이나 우연이 진짜 결정적인 요소라면 합목적적인 인간의 행동은 근거가 사라질 것이며, 이는 가장 완고한 행운 평등론자조차도 주장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설령 그들이 행운이나 우연이 궁극적인 결정 요인이며, 그로 인해 합목적적인 인간의 행동의 근거가 사라진다고 주장했었다 하더라도, 그 경우에 행운은 부를 재분배하려는 자들과 국가 엘리트들 누구건 그들의 합목적적인 행동도 좌절시킬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행운"이나 "우연"을 말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진짜로 무작위적 우연 혼돈이나 상황에 끼어드는 예측 불가능한 힘이 아니다. 그 의미는 모든 행동 및 결과에는 알려지지 않은 요소인, 불확실성 또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의 합목적적인 행동이나 선택과 결과 사이의 연결을 내동댕이치는 것도 아니고, 또는 재산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지식의 문제 그리고 행운의 분배
"형평성"에 관한 현대의 논쟁에서처럼, 즉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동등한 기회와 결과를 제공한다는 목표 아래 특히 국가가 불평등한 대우를 조장하는 것을 옹호하는 주장에서처럼, 하이에크의 지식 문제라는 근본적인 쟁점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평등주의자의 형평이 명백하게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유포된 인기 있는 이미지가 제시되어왔다.<15>
<그림 1>

평등(equality)과는 달리, 형평(equity)은 공정한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환경과 필요를 보정하려고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운에 관해서 말하자면, 위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행운을, 즉 높이가 고르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는 예시이며, 형평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명백한 해결책이라고 제시된다. 기회와 결과가 행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더 명백한 형평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관점이 직면한 문제점들은−윤리적 문제는 별개로 하고−다음과 같은 가정이다. 개인이나 집단은 1) 사람들이 차이가 있고 불평등하며, 행운이 있거나 불운이 있다는 모든 관련 요소에 대한 암묵적이고 질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을 소유할 수 있고, 2) 각 개인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각자가 받아야 할 정확하고 전문적이며 고유한 대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며, 3) 평등한 기회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이러한 불평등한 대우를 능숙하게 집행할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이다.
형평 이미지는 하나의 상황에서 세 사람 사이의 하나의 행운 변수만을, 즉 키의 차이만을 보여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특수한 상황, 다양한 행운 및 불평등의 다른 측면, 서로 다른 주관적 선호도, 그리고 발생할 수도 있는 변화들을 더해 보자. 또한, 심지어 국가나 다른 기관이 기회나 결과를 균등하게 만들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하더라도, 엘리트들이 모든 정보를 소유할 수는 없으며, 그들의 가장 강력한 행동조차도 불운을 없애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하자. 이제, 키가 다른 세 사람이 같은 크기의 상자 위에 서서 울타리 너머를 보려고 하는 상황 대신, (미국에서 관찰되는) 둥근 특권 교차 표<16>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림 2>

이 모형이 전제하고 내리는 결론에는 여러 가지 쟁점에 주목할 수 있지만, 의도치 않게 중요한 점을 제공해준다. 인간은 수많은 교차하는 길들에서, 계산 가능한 것과 계산 불가능한 것, 선택된 것과 선택받지 못한 것 등에서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다.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그의 저서 《전 우주적 정의 탐구(The Quest for Cosmic Justice)》<17>에서,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너무나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요소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고 계산하려면 전지전능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평등주의자의 평등주의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행운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특정 변수들의 정량화 가능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정량화할 수 없는 다른 많은 관련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행운은 계산하거나 정량화할 수 없다. 특정 성공 또는 실패 사례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로스바드는 바로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다.<18>
“그렇다면 행운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해질 것이다. 모든 시장 활동에는 행운이 불가분하게 얽혀 있어 분리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운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행운의 분배가 어떻게 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재분배’ 정책의 정당화도 어렵다.”
만약 성공을 행운 덕이라고 보고, 행운이 재산 강탈 및 재분배를 정당화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행운이라는 변수를 분리해 낼 수 있어야 하고 행운이 성공에 기여한 정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행운을 욕하는 것은 정당화도 못하면서 주장하는 비난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떻다고? 행운, 재산권, 그리고 국가주의자의 비논리성
바람직한 결과가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행운 혹은 우연에 기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불공정한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운이란 (설령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측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으며, 다양성과 불평등은 자연적인 현실이자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요소이므로, 재산이 생산이나 교환을 통해 합법적으로 취득되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행운에 관한 이러한 주장은 국가주의적 비약의 고전적인 사례이다.<19> 로스바드의 다음 진술이<20> 이를 잘 보여준다. “비평가는 [전제:] 시장이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 부적절하게 월계관을 씌워준다고 고발한 후,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 ‘부자’(또는 운이 좋은 사람)의 재산을 수탈하고 ‘가난한 사람’(또는 운이 없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산권은 소위 행운이라고 불리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인한 것이니 부적절한 것이거나 적어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계량할 수 없는 행운이나 우연에 의해 재산을 생산하거나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그 재산을 정당하게 몰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은 이를 간단한 수사적 질문으로 표현한다.<21> “아무리 불평등의 원인이 행운이라고 해도,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뭐가 문제인가?” 겉으로 보기에 누군가가 순전히 행운으로 이득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그의 재산에 대해 더 높게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단지 다른 사람의 행운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재산을 강도질하기에 충분하고 그것을 재분배 정의라고 부르기에 충분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재산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행운을 비난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수탈하기 위하여 국가 권력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데이비드 고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22> “심지어 당신이 타고난 재능으로 이윤을 얻을 도덕적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이 이를 정당한 재산 취득 및 이전 제도를 통해 얻은 것인 한, 당신은 더 나은 부와 소득을 누릴 권리가 있다.”
결론
행운이나 우연을 독립적이고 결정적인 변수로 보는 철학은, 결과들을 행동들로부터 분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자율성을 약화하고 시기와 탐욕을 조장한다. 행운이라는 개념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그 결과가 항상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만약 수단과 목적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미 있게 정립될 수 없다면, 그 경우에는 행동도 무의미해진다.
성공을 행운 덕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행운이 어느 정도 존재했든 간에) 아무런 증거도 없이 성공이 부당하다고 선언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행운 평등주의의 옹호는 무지하거나 시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자신들이 오해하고 있는 결과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결과를 목격하면서 생겨난다. 행운을 비난하는 것은 “운 좋은” 사람들을 수탈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행운 평등주의자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그들이 시기하는 성공한 사람들 사이의 유일하게 의미 있는 차이점이 행운이라고 불리는 통제할 수 없고 불가사의한 힘이라고 믿게 만든다.
주)
<1>https://cdn.mises.org/man_economy_and_state_with_power_and_market_3.pdf#page=1398
<2>https://cdn.mises.org/man_economy_and_state_with_power_and_market_3.pdf#page=1398
<4>https://www.amazon.com/Rescuing-Justice-Equality-G-Cohen/dp/0674030761/?tag=misesinsti-20
<5>https://cdn.mises.org/Human%20Action_3.pdf#page=142
<6>https://www.hacer.org/pdf/Menger04.pdf#page=51
<7>https://cdn.mises.org/Human%20Action_3.pdf#page=59
<8>https://cdn.mises.org/Ultimate%20Foundation%20of%20Economic%20Science_3.pdf#page=31
<9>https://cdn.mises.org/Ultimate%20Foundation%20of%20Economic%20Science_3.pdf#page=38
<10>https://cdn.mises.org/Human%20Action_3.pdf#page=59
<11>https://cdn.mises.org/Ultimate%20Foundation%20of%20Economic%20Science_3.pdf#page=40
<12> MISES, Ludwig von (1962). The Ultimate Foundation of Economic Science p.21 (박종운 역. 경제과학의 궁극적 기초. p. 35) https://cdn.mises.org/Ultimate%20Foundation%20of%20Economic%20Science_3.pdf#page=31
<13> MISES, Ludwig von (1949, 1996). Human Action, 4e. Fox & Wilkes p.22 (민경국; 박종운 역. 인간행동, 1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p. 48) https://cdn.mises.org/Human%20Action_3.pdf#page=59
<14> MISES, Ludwig von (1962). The Ultimate Foundation of Economic Science p.19 (박종운 역. 경제과학의 궁극적 기초. p. 33) https://cdn.mises.org/Ultimate%20Foundation%20of%20Economic%20Science_3.pdf#page=29
<15>https://interactioninstitute.org/illustrating-equality-vs-equity/
<17>https://www.amazon.com/Quest-Cosmic-Justice-Thomas-Sowell/dp/0684864622
<18>https://cdn.mises.org/man_economy_and_state_with_power_and_market_3.pdf#page=1398
<19>https://mises.org/mises-wire/statist-solution-really-non-sequitur
<20>https://cdn.mises.org/man_economy_and_state_with_power_and_market_3.pdf#page=1398
<21>https://mises.org/mises-wire/are-highly-paid-people-just-lucky
<22>https://mises.org/mises-wire/are-highly-paid-people-just-lucky
옮긴이 의견)
인간의 행동 환경에는 항상 수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미래를 잘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는 사람을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겐 이러한 선견지명이 없다. 그렇지만 비록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사례에서 원리(principle)를 찾아서, 주요한 동력들에 비슷한 요소가 많다면 일률 원리(uniformity principle, UP)에 의해서 그것이 기본으로 관철되고, 바뀐 요소들에 의해서는 일부 변용될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과거 경험 속에서 원리를 찾아 선견지명의 부족을 보충하려고 한다. 선견지명이 없으면, 최소한 원리 학습, 지혜 학습 등의 후견지명(後見之明)이라도 갖추어야 실패를 덜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중에는 행운도 있고 불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도가 없이는 행운도 불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시도와 노력이 행운을 만나면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시도와 노력이 결정적인 요소이고, 행운을 만날 것인가 불운을 만날 것인가는 ‘감(感)’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듯이 계량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감을 보충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행운을 나꿔챌 결정적인 요소는 시도와 노력, 그리고 준비로서의 (시장)조사다.
원리는 지식이지만, 원리를 활용하여 시도하고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은 지혜다.
인류 역사에는 이런 지혜를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다.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행운은 준비된 마음을 좋아한다(Fortune favors the prepared mind),’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보다 일찍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5년경~기원후 65년)도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Luck is what happens when preparation meets opportunity),’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세네카의 책에서 이 문장을 직접 찾을 수는 없다. 세네카는 레슬러 데미트리우스(Demetrius)의 이야기를 하면서 ‘위대한 레슬러는 모든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한두 가지를 익히고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예리하게 관찰하는 사람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인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행운’ 등의 문구를 넣는 식으로 약간 변형하여 명언으로 만든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행운, 그리고 행운에 대한 질투와 관련된 사례를 들어보자.
2025년 하반기부터 AI 시대를 맞이하여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그에 따라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반도체 사업의 수익이 급증하였다. 대한민국의 삼성전자, 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그 혜택을 입었다. 우리도 이런 추세를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준비되어 있지 못했고, 오직 그 준비를 갖추었던 기존 업체들 삼성전자, 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만 수혜를 입었다. 우리가 아닌 그들이 행운을 만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갑자기 감나무 밑에 누워있기만 했었는데 그들의 입에 감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세계 최정상 첨단 미세공정을 갖춘 반도체 생산을 해왔기에 이러한 행운 열차에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행운을 맞이하여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인 37조원(개인별로는 약 6억원)의 상여금을 내놓으라고 하고, 이의 관철을 위해서 파업을 하겠다고 한다. 급여의 몇 %를 상여금으로 얹어달라는 호소 정도가 아니다. 노조의 요구에는 노동계약자가 아닌 투자자에게 돌아갈 ‘이윤 분점 논리’로의 비약이 깔려있다.
이에 한술 더 떠서 산업부 장관(김정관)은 “삼성전자의 이익이 과연 경영진과 노동자만의 결실로 볼 수 있는지 의문 … (삼성전자의 결실에는) 수많은 인프라, 협력기업, 400만 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 등이 모두 연관돼 있다,”고 했다. 협력기업들에는 매매 관계를 통해서 이윤이 나눠지고 있으며, 소액주주나 국민연금은 주식 가격 상승으로 몇 배의 이익을 얻었고, 국가도 막대한 세금 수익을 얻었음에도, 이 말은 외부에서 숟가락을 얹을 준비를 하겠다는 말로 악용될 수 있다. 나아가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 이익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도 경영진의 판단 몫인데도 외부에서의 참견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러나 행운은 반도체 생산 기업이 반도체 산업의 상승 하강을 모두 겪고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다가온 것이다. 그 행운을 기업가와 투자자만 챙기냐는 질투는 생길 수 있지만, 자칫 그 행운이 순전히 우연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누구나 이윤 분점론을 제기하고, 이것이 국가 수탈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운을 해석하는 데 오류가 생기면 안 되며 행운 평등주의가 자칫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을 꺼내는 일’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점에서 이 번역 글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글쓴이) Joshua Mawhorter
조슈아 모호터는 Mises.org의 보조편집인이다. 그는 미제스 연구소(Mises Institute)의 여름 특별 연구원(2023년)이었고, 2016년 이래 정부/경제학 그리고 미연방 역사 선생님이었다. 조시는 베이커스필드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했고, 서던뉴햄프셔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미제스 대학원(Mises Graduate School)에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으로 석사학위(2023)를 취득했다. 그는 《최초의 헌법: 연합 규약(The First Constitution: The Articles of Confederation)》, 《폭군룡 부채: 학생 대출 위기와 생존법(Tyrannosaurus Debt: The Student Loan Crisis and How to Survive)》을 포함하는 몇 권의 책과 자기 학위논문, “오스트리아학파의 현대 화폐 이론 비판(An Austrian Critique of Modern Monetary Theory)”을 자비 출판하였다. 그는 신학 영역에서 구약, 교회사, 그리스도교 옹호, 그리고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why-luck-doesnt-explain-wealth-and-success-marketplace
옮긴이) 박종운(전 자유민주시민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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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행운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다가온다.
1.부의 불평등이 행운에 의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2.그러나 행운을 잡으려면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3.준비된 사람이란 노력을 거듭하는 사람들이다.
4.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5.자신이 행운을 잡을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행운이 와서 성공한 예는 없다.
6.물론 운칠기삼이라고 해서 운이 70퍼센트이고 기술이 30퍼센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7.그러나 행운이 다가와도 그것을 잡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부의 불평등의 담론에 들어있지 않다.
8.누구나 행운을 찾아서 그것을 잡고 싶어하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만이 잡을수 있다.
9.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가가 올라도 시드머니조차도 준비되지 않은사람들에게는 주가폭등은 남의 이야기이다.
10.그리고 행운은 그 행운의 씨앗을 뿌린 사람에게만 온다.
11.행운이 무차별적으로 우연히 찾아오는 것 같아도 자신이 과거에 심었던 선근의 뿌리가 행운의 원인이기 때문에 불평등을 논하기 전에 과거에 어떤 행운의 씨앗을 뿌렸는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12.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이유없는 까닭이 없듯이 행운도 자신이 뿌린것을 자신이 거둘 뿐이다.
13.행운이 거져 주어진것 같아도 과거에 행한 자신의 친절과 기부나 봉사가 행운의 형태로 주어질 뿐이다.
14.이 세상에는 공짜로 주어지는것이 없고 그 측면에서 행운도 자신이 과거에 심은 선한 근본이 원인이 되어서 현재에 나타날 뿐이다.
15.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고 행운도 자신이 쌓은 업의 결과물이다.
16.선한 원인을 쌓으면 선한 결과가 나타나고 악한 원인을 쌓으면 악한 결과가 나타난다.
17.행운을 잡고 싶으면 행운이 드러나게 행운의 원인을 쌓으면 된다.
18.남의 행운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이 어떤 행운을 가질지를 지금 선택해서 행운의 원인을 심어라.
19.자신이 쌓은 행운은 그 결과가 늦든 빠르든 자신이 거두게 된다.
20.부자는 운이 좋아서 막대한 소득을 쌓는듯 보여도 그 사람이 쌓은 선한 뿌리의 원인이 그 결과로 드러날 뿐이다.
김도헌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