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는 분업의 기원을 오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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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6-03-03 06:18 조회641회 댓글2건본문
애덤 스미스는 분업의 기원을 오해했다
Mark Thornton, 2026. 2. 3. (황수연 옮김)
서로 다른 재화들의 생산으로 나누어지거나 심지어 단일 재화의 생산에 수반되는 다양한 작업으로조차 나누어지는 노동은 인간 문명의 본질에 관한 가장 초기의 관찰들 중 하나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문명이나 사회는 분업이다. 불행하게도, 죽 시간 내내 전문적인 의견은 그것을 혼합된 축복으로 잘못 생각하고, 그것이 선과 악 양쪽 다를 위한 큰 영향력이라고 암시한다.
이 공통적인 전문적인 의견은, 경제 법칙이 없이, 대개 관찰, 측정, 개인적 편견의 토대 위에서 비틀거린다. 지배하는 오류들은 오직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그것의 선배들이 제공한 이론적 시각을 가지고서만 근절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주제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중심적 중요성과 그의 기본적인 실수들은 경제학 전문 분야와 더욱 일반적으로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건전하지 못한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고 있다.
스미스는 유명하게 자기의 ≪국부론≫(1776)을 분업에 관한, 그리고 핀들의 생산이 열 개의 작업으로 나누어져서 핀 생산이 하나하나의 개별 생산으로부터 상상되는 수준보다 몇 배로 증가하는 핀 공장의 예에서 그것[분업]을 설명하는 것에 관한, 한 장을 가지고 시작한다. 비록 스미스가 나라들 사이 차이들과 불일치들을 정말 제기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노동이 우선 나누어지게 되는 방법을 질문하지 않고서 분업이 더 생산적인 몇몇 이유를 탐구한다.
그것을 ≪국부론≫의 맨 앞에 놓은 점을 고려하면, 많은 독자가 분업이 부의 원인(the cause of wealth)이라고 가정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 밖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스미스가 분업의 원인, 노동을 나눈 주체,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스미스의 독자들은 이 중요한 질문들에 관해 추측하게 내버려 두어진다.
스미스의 분업 토론 어느 곳에서도 기업가, 소유자, 혹은 위임된 경영자가 없다. 스미스는 노동 가치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러나 리처드 캉티용의 학생으로서, 스미스는 적어도 제1권 제6장에서 “사업가(undertaker)”나 기업가에게 그의 노력들의 “위험들(hazards)”이나 불확실성에 대해 지급할, 그리고 제공된 자본을 자본가로서 회수하고 보상받을, 필요를 정말 인식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가는 근로자들이 작업장을 마음대로 지배하게 허용한다. 스미스는 분업에서 사용되는 도구들과 기계들을 발명하는 “철학자들(philosophers)”이나 사색가들에 관해 정말 이야기하지만, 그는 다른 점에서는 분업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해 침묵한다. 어느 곳에서도 분업의 메커니즘이 토론되지 않는다.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스미스도 역시 분업에 관해 이야기할 부정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미스는 그것이 근로자 무지와 타락 그리고 일정 노동 유형들 사이에서 일종의 인간 이하 침체에 이른다고 믿었다. 스미스는 자기가 이것이 교육과 더 많은 사회적 정신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천한 일들이, 낮은 동기를 가진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농장 일보다 더 쉽고 더 나은 작업 조건들과 더 정기적인 보수를 제공한다면, 그들에게 대여될 것이라고 하는 간단한 생각을 그저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스미스는 아마도 현실 세계 분업에 친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스미스 자신이 자기의 핀 공장 예를 어느 유명한 백과사전에 게재된 어느 더 이른 필자로부터, 완전히, 훔쳤었을지라도, 그는 유명하게 자기 친구들과 선생들을 그 예를 사용한다고 공격하고 도전했다. 그 토론을 그의 개인적 편견들에 개방한 것은 그의 친숙성 부족이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도 역시, 자기 이전의 바스티아처럼, 분업을 사회 조직, 경제 발전, 그리고 경제적 진보의 주요 성분으로 평가했다. 미제스는 국제 분업이 인간 진보의 원천층(source bed)이라고 정기적으로 언급했다. 애덤 스미스와 미제스 사이 주요 차이점은 미제스가 노동을, 심지어 원시적인 수준에서일지라도, 설명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심리적인 혹은 그 밖의−이윤에 따라 움직여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이문이 있는 관행들을 발견하고, 집행하며, 복사한다.
예상 밖이 아니게도, 미제스는 기업가를 분업에서 중심적인 힘으로 두었다. 리처드 캉티용을 따라, 그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여 자기 향상을 위해 행동하고, 그들의 보상이 이윤인, 그의 기업가 정신과 이윤 이론을 전개했다. 손실들의 가능성은 그들의 행동들에 대한 일상적이고 궁극적인 견제였다. 미제스의 시각은 이론적이지, 관찰에 의하거나 측정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그의 분석에서 개인적인 편견을 거부한다.
스미스는 기업가를 무시했거나, 몇몇 사례에서는, 사회에서 그의[기업가의] 역할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 가치론과 결합할 때, 그것[그 점]은 그의 전 경제 학설을 의심스럽고 오도하는 것으로서 서서히 해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기의 기초를 스미스의 노동 가치론에서 발견했는데, 스미스의 분업 공격들에서 위안을 찾았음에 틀림없다.
아마, 사회주의자들은 스미스의 기업가 없는 분업을 자기들의 계획들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깨닫는 것이 틀림없다. 다수의 친-정부 개입 경제학자들, 특히 기술 관료들은 스미스의 방향 없는 분업이 사회를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다시 만들 자기들 자신의 개인적 계획들을 유혹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틀림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개입주의자들은 분업의 생각에 대해 반대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의 중심적인 조직하는 인물, 즉 기업가를 거부한다.
더욱더 기본적인 수준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류의−스미스학파 견해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관념 위에서 비틀거린다. 분업의 맥락에서, 미제스, 라스바드, 그리고 살레르노는 개인의 독특함을 강조했고 능력들, 경험들, 그리고 기호들에서 차이들이, 더욱 넓게, 분업을 사용하는 것으로부터의 주된 이득 원천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그 결과들은 자유 시장에 의해 그 개인과 소비자들 양쪽 다를 위해 최상으로 조화된다. ≪라스바드 독본(Rothbard Reader)≫으로부터 제9장과 제10장을 보라.
리처드 캉티용은 분업을 분리된 주제로 강조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여전히 강건한 지속적인 기업가 정신 이론을 제공한 것에 덧붙여서, 그는 전문화된 지적 직업들에서 기능과 자본의 획득 그리고 결과로 생기는 필요한 임금률 증가를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널리 인정된 핵심 경제학 개념, 즉 기회비용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고유한 가치(intrinsic value)”로 불렀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는 증가한 가치나 부로 귀착하는 어떤 것 위에 혹은 내부에 두어지는 가치를 의미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결과로 생기는 임금들이 기회비용들보다 더 크지 않으면 가족은 아들의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도제 과정에 착수하지 않을 것이다. 캉티용의 예는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결정을 하는 가족의 고려와 비슷했다.
애덤 스미스는 이전 세대로부터의 프랑스 핀 공장에서의 분업에 과장된 중요성을 두었지만, 그의 생애에 일어나고 있었던 산업 혁명을 서술하지 못했다. 분업으로,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이윤 동기에 기초하지 않고, 개인적인 자기 향상 충동보다 오히려 운송하고, 물물 교환하며, 화폐 교환하는 우리의 타고난 성향 혹은 습관에 기초한, 경제 발전과 성장을 낳은 타고난, 마법적, 평등주의의 시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 결과, 스미스의 교과서에는 대개 기업가 정신의 진정한 경제 엔진이 없었다.
충분하게 서술되고 동기 부여가 된, 그 과정의 현대적 역작에 대해서는, 미제스 연구소가 출판하고, 페어 바일런드(Per Bylund)와 데이비드 하우던(David Howden)이 편집한 책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다음 세대: 조지프 T. 살레르노 기념 소논문들(The Next Generation of Austrian Economics: Essays in Honor of Joseph T. Salerno)≫에서 제6장, 페어 바일런드의 “시장에서 기업가 정신의 영역: 자본 이론, 생산, 그리고 변화”를 보라.
https://mises.org/library/book/next-generation-austrian-economics-essays-honor-joseph-t-salerno
글쓴이) Mark Thornton
마크 손턴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이자, ≪계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의 서평 편집자이다. 그는 7권의 책을 저술했고 전국 라디오 쇼(national radio show)의 빈번한 특별 출연자이다.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adam-smith-misunderstood-origins-division-labor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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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oooo님의 댓글
oooo 작성일고전파 경제학의 한계에 관한 단초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노동 분업은 지적 분업의 기업가의 역할이다.
1.노동 분업은 국부론의 첫 챕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2.더 많은 생산과 노동분업은 정(+)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3.그러나 노동 분업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각 생산부문들을 특수한 부문으로 잘게 쪼개어서 분업의 생산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적 분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노동 생산성이 이루어진다.
4.즉.지적 분업이 기업가를 통해서 먼저 이루어져서 전체 생산부문을 잘게 쪼개어서 가장 생산성을 많이 이루는 방법으로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 분업은 쓸모가 없고 생산성도 담보할수 없다.
5.노동분업 이전에 지적 분업이 이루어져야만 생산단계마다의
분업이 일어나서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6.지금의 현대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전체 생산 공정을 분업해서 만든다고 해도 지적 분업으로 먼저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가들이 지적 분업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계획은 요원할 것이다.
7.이러한 지적 분업을 해외로 넓게 확장한 것이 리카도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생산비의 고찰이다.
8.리카도의 자유무역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생산은 스미스의 분업을 국제무역으로 크게 확장한 것이다.
9.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자급자족 생산보다 사람을 덜 쓰면서도 생산성을 높이는 생산비를 낮추는 방법은 광범위한 비교우위에 입각한 국제분업의 생산이다.
10.스미스의 절대우위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국내에서 고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리카도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생산은 더 적은 비용으로 자신들이 더 생산성을 높이고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비용을 절감하는데 초점을 둔다.
11.일자리를 늘리려면 처음부터 분업을 하지 말고 생산성을 생각하지 않거나 생산비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12.그러나 기업은 더 값싼가격에 더 많은 질좋은 제품을 생산하려면 지적 분업을 통한 노동분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지적 분업은 기업가들이 행하는 일이다.
김도헌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