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학파의 아리스토텔레스학파-토마스학파 근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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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6-02-03 03:30 조회1,006회 댓글3건본문
오스트리아학파의 아리스토텔레스학파-토마스학파 근원들
Daniel Morena Viton, 2026. 1. 7. (황수연 옮김)
아리스토텔레스학파(Aristotelian)-토마스 [아퀴나스] 학파(Thomistic) 현실주의 철학은 인간 행동학 같은 학문 분야들의 가장 강한 기초일지 모른다.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이 자기의 책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철학적 기원(The Philosophical Origins of Austrian Economics)≫에서 언급하듯이, 오스트리아학파와 현실주의 철학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옹호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명백히 표현했었던 개인 인간 행동의 견해이다. ≪사후 분석학(Posterior Analytic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오스트리아학파의 두 번째 주요 특징도 옹호했다: 자명한 공리로부터 과학적 지식의 연역. 이런 의미에서, 미셸 아카드(Michel Accad)1)는 주장한다:
“우리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 사고에서 뚜렷하게 아리스토텔레스학파적인 원리들을 식별할 수 있다. 첫째는 인과적 현실주의(causal realism)이다.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은−비록 명시적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묵시적으로−마음과 독립적인 현실이, 즉 감각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인간 마음이 알 수 있는 마음 바깥의 세계가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동의하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처럼, 원인과 결과 관계들은 현실적이고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 발견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은 감각 지식의 일반적인 신뢰성을 그리고 이성의 현실에 대한 일치를 믿는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경제 과학을, 첫 원리들로부터 시작하여, 체계적인 양식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둘째, 인간 행동을 목적론적(teleological)으로 해석하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으므로, 오스트리아학파는 현대 철학과 과학의 주류로부터 분리되었고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으로의 후퇴라고 비판받았다. 이유를 알기는 쉽다: 인간들이 ‘느껴진 불안을 풀기 위해(to satisfy a felt uneasiness)’ 행동한다는 미제스의 개념은 모든 행위자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every agent acts for an end)는 스콜라 철학자의 금언과, 더욱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자기들의 능동적인 잠재성을 실현하는 자기-완성의 존재들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을 상기시킨다. 목적론적 현실주의(teleological realism)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원리이고 또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서 기초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첫 번째 문단은 오스트리아학파의 방법론적 지위를 역점을 두어 다룬다. 고든은 미제스가 칸트의 용어법을 채택한다고 설명한다: 오스트리아학파의 명제들은 종합적 선험적(synthetic a priori)[역주1] 진실들인데, 이것은 세상 사람이 결정론이 언젠가 진실로 드러날지 모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마도 틀림없이 미제스가 자기의 출발점을 칸트에서 잡은 것에서 유래하는 불필요한 양보일 것이다. 머리 라스바드(Murray Rothbard)는, 인간 마음이 혼란스러운 현실 구조에 부과하는 “논리 구조의 법칙들(laws of logical structure)”이 있으므로, 행동이 모든 경험에 앞선다는 미제스의 견해−즉, 방법론적 이원론(methodological dualism)−를 거부한다. 아카드는 주장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러한 방법론적 분리는 불필요하고 역효과를 내는 것 같을 것인데, 그것이 인간을 그의 더 큰 우주론적 맥락으로부터, 즉 또한 목적론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또한 인간 행동에도 적용되는 근본 원리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는 자연 세계로부터, 뿌리째 뽑아버리기 때문이다.” (p. 295)
라스바드는 이 법칙들이, 마음이 현실 세계의 사실들을 탐구함으로써 파악하는, “현실의 법칙들(laws of reality)”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공리와 부차적인 것들 양쪽 다 경험으로부터 도출되고 경험적−그러나 흄 이후의(post-Hume) 의미에서가 아니라−이다. 인간 행동학의 공리들은 근본적으로 경험적이고 자명하며, 따라서 그것들은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의 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필요로 하는 유일한 증거는 그것들이 논리의 법칙들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현대 경험주의는 관련이 없는데, “증명한다(prove),”는 것이 전에 명백하지 않았던 것을 명백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만약 한 진실이 자명하다면, 그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단은 목적론(teleology)에 관한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목적론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 행동을 목표 지향적 행동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단지 기계적 반응들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개인들이 자기들의 필요들을 만족시키려고 시도하는 방식을 연구한다. 카를 멩거(Carl Menger)는 이 목적론을 자기의 자본 이론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고차재 재화들은 그 자체 가치가 없고, 오직 그것들이 소비재의 생산에 이바지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자본은 단순한 물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기업가적 계획들로 형성되는 순서가 매겨진 구조인데, 기업가적 계획들을 통해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들이 결합된다. 그러므로, 생산은, 수단들이 오직 그것들이 달성하려고 시도하는 목적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얻는, 겨냥되는 과정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관한 실증주의 비판들 중 하나는 “행위자가 항상 자기가 지닌 가장 높이 평가되는 목적을 선택한다,” 같은 진술문들이 동어 반복이라는 것이다. 이 반대에 따르면, 만약 “가장 높이 평가되는”이 그저 “그 행위자가 선택하는 것”만을 의미한다면, 그 진술문은 현실에 관해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않고 단지 똑같은 생각을 서로 다른 말들로 재진술할 뿐이다. 그러나 아카드는 이 비판을 현실주의 시각으로부터 논박한다. 그는 동어 반복의 비난이 오직 한 재화의 우수성 혹은 가치가 순전히 주관적일 경우에만−즉, 그것이 마음 밖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행위자의 결정에 달린 경우에만−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견해에 반대해서, 그는 가치가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비록 각 행위자가 자기의 특별한 상황에 따라 사물들을 인식하고 등급 짓는다고 할지라도, 사물들 자체에도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러므로 인간 행동학은 공허한 동어 반복이 아니라, 실증주의 통계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연역 원리들에 기초하는 이론 체계의 전개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지식과 세계의 객관적인 구조 사이 관계를 서술하는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주)
옮긴이 주)
[역주1] 진실들에 관한 칸트의 분류에 따르면, 분석적(analytic): 의미만으로 참/거짓이 결정된다; 종합적(synthetic): 세계의 상태와의[경험과의] 일치 여부로 참/거짓이 결정된다; 선험적(a priori): 경험과 독립적으로 참/거짓이 결정된다; 그리고 종합적 선험적(synthetic a priori): 경험 없이도 참/거짓이 결정될 수 있지만, 의미만으로는 참/거짓이 결정되지 않는다.
글쓴이) Daniel Morena Vitón
다니엘 모레나 비톤은 오스트리아학파 대학원(Austrian School)으로부터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윤리학 그리고 정치학 같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출처) https://mises.org/mises-wire/aristotelian-thomistic-roots-austrian-school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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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ooo님의 댓글
ooo 작성일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하이에크의 비난과는 그 결이 달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행동.그 변화의 시작.
1.관상을 볼때에 누군가는 가장 제일로 치는 것이 심상이라고 주장한다.
2.아무리 관상이 좋아도 심상인 마음씨가 곱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3.그러나 나는 아무리 좋은 심상을 가지고 있어도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폭풍우일뿐 실제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4.그래서 관상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행상이다.좋은 마음씨를 실제로 세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5.왜냐하면 미제스의 주장처럼 행동이 변화를 가져오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6.그리고 인생은 누구에게는 성공이 미리 예정되어 있고 다른 이에게는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고정된 세계라는 것이라고 운명적으로 미리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7."료범사훈"이라는 책을 보면 어느 점쟁이한테서 자신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저자가 어느 스님에게 하루에 열가지씩 선행을 베풀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수 있다고 해서 실천한 결과 자신의 운명이 달라졌고 그것을 책으로 내었다.
8.인간은 세상 사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의 행동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수 있음을 행동으로 알기 때문이다.
9.누군가가 관상가나 점쟁이의 말을 믿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관상가나 점쟁이의 말대로 된다.
10.그러나 료범사훈의 저자처럼 하루에 열가지씩 좋은 일인 선행을 실천하면 운명도 바뀌고 미래도 바꿀수 있다.
11.미래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고정된채 다가오지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변화되어서 다가온다.
12.미제스가 인간행동이라는 책을 제목으로 적은 이유도 The result of human design, but not of human action이라고 해서 마음속에서 그치고 마는 계획보다는 실제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변화의 출발점이 인간들 각각의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게 책 제목을 Human Action으로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13.알고 있는것에 그치지 말고 실천하자.
14.그래야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마법을 인간행동으로 증명할수 있으니까.
김도헌 올림.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행동.그 변화의 시작.
1.관상을 볼때에 누군가는 가장 제일로 치는 것이 심상이라고 주장한다.
2.아무리 관상이 좋아도 심상인 마음씨가 곱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3.그러나 나는 아무리 좋은 심상을 가지고 있어도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폭풍우일뿐 실제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4.그래서 관상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행상이다.좋은 마음씨를 실제로 세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5.왜냐하면 미제스의 주장처럼 행동이 변화를 가져오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6.그리고 인생은 누구에게는 성공이 미리 예정되어 있고 다른 이에게는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고정된 세계라는 것이라고 운명적으로 미리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7."료범사훈"이라는 책을 보면 어느 점쟁이한테서 자신의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저자가 어느 스님에게 하루에 열가지씩 선행을 베풀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수 있다고 해서 실천한 결과 자신의 운명이 달라졌고 그것을 책으로 내었다.
8.인간은 세상 사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의 행동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수 있음을 행동으로 알기 때문이다.
9.누군가가 관상가나 점쟁이의 말을 믿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관상가나 점쟁이의 말대로 된다.
10.그러나 료범사훈의 저자처럼 하루에 열가지씩 좋은 일인 선행을 실천하면 운명도 바뀌고 미래도 바꿀수 있다.
11.미래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고정된채 다가오지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변화되어서 다가온다.
12.미제스가 인간행동이라는 책을 제목으로 적은 이유도 The result of human action, but not of human design이라고 해서 마음속에서 그치고 마는 계획보다는 실제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변화의 출발점이 인간들 각각의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게 책 제목을 Human Action으로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13.알고 있는것에 그치지 말고 실천하자.
14.그래야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마법을 인간행동으로 증명할수 있으니까.
김도헌 올림.
PS조금 잘못 쓴 부분이 있어서 고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