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인구 오류: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지식과 번영을 의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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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7-07 21:20 조회926회 댓글1건본문
과잉인구 오류: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지식과 번영을 의미하는 이유
Amir Iraji, 2025. 04. 11. (황수연 옮김)
수십 년간, 인구 증가를 둘러싼 지배적인 설화는 경보의 그것이었다. 맬서스 같은 사상가들은 인구 증가가 대량 기아와 생태적 붕괴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를리히의 1968년 책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은 수억의 사람이 1970년대에 과잉인구 때문에 굶어 죽을 것으로 예측했다.
오늘날, 걱정이 이동하고 있다. 한때 과잉인구를 두려워했던 바로 그 정부들의 다수는 지금 출산율 감소에 관해 걱정하고 있다.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의 많은 지역 같은 나라들은 경제 침체 및 노령 인구들과 싸운다. 심지어 중국조차도−자기의 강제적인 한 자녀 정책을 집행한 후−지금 더 큰 가족들을 장려하고 있다. 이 이동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잉인구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유래했고, 그것은 도대체 정당화되었는가?
이 두려움은 예로부터의 영합(零合) 견해−부와 자원들이 고정되어 있고, 인구 증가가 단지 그런 자원들을 더 작은 부분들로 나누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믿음−에 뿌리박혀 있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어느 도시의 인구가 너무 크게 성장하여 사람들이 서로를 알 수 없다면, 자원들이 소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증거는 명백하다: 만약 예로부터의 이론이 옳다면, 현대 [인구 1,000만 이상의] 거대 도시들은 반(反)이상향의 황무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도쿄, 뉴욕, 그리고 런던 같은 도시들은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역동적인 장소들에 속한다. 그래서 이 영합주의 논리가−직관적으로 그것을 믿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더 잘 알아야 하는 소위 전문가들, 특히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지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인간 사회들에 관한 그들의 정태 견해−정태 오류−에 있다. 그들의 가정들은, 변수들과 결과들이 고도로 정확하게 예측될 수 있는, 자연 과학들로부터 빌린, 정태 모형들에 기초한다. 물리학에서나 생물학에서, 일정 요인(예, 쥐들이나 메뚜기들의 수)의 증가는 예측할 수 있는 결과들(자원 소진과 기아)에 이른다.
이 견해는 결함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들이나 다른 물리적 물질과 달리, 인간들은 그저 수동적인 자원 소비자만이 아니다. 그들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혁신적인데, 끊임없이 해결책들을 찾고 자기들의 환경을 재형성한다. 웨르타 데 소토(Huerta de Soto)가 표현하듯이, 그들은 고유한 기업가적 발견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쥐들, 벌들, 혹은 상어들과 달리−우리가 10,000년 전에 (혹은 심지어 5년 전에도) 살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살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 역사는 중요한,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발견들로 가득 차 있다. 페니실린을 예로 들어보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우연한 획기적인 발견 이전에는, 세균성 감염들은 사망의 주요 원인들에 속했다. 어떤 예측 모형도 이 발견을 예견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구했다. 혹은 3D 인쇄를 고찰해 보라−한때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지금 제조업, 의학, 그리고 심지어 우주 탐험조차도 바꾸고 있다. 우리는 또한 새로운 그리고 미래의 AI 기술들의, 게다가 그 밖의 것들의,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도 하다.
이것은 ≪인구 폭탄≫에서 에를리히의 예측들이 실패한 이유와 그가 또한 줄리언 사이먼(Julian Simon)에 대해 건 그 유명한 1980년 내기에서 지기도 한 이유를 설명한다. 에를리히는 인구 증가가 자원들을 소진하고 가격들을 올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이먼은 인간 창의성이 풍부함에 이르고 비용들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십 년간 다섯 개 금속에 돈을 걸었고, −1990년까지는−다섯 개 모두 가격이 떨어졌었으며, 사이먼이 옳음을 증명했다.
웨르타 데 소토는 인구 증가가 붕괴보다는 진보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한 주요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분업(division of labor)과는 반대로, 경제적 진보의 진정한 추진 요인이 “지식의 분할(division of knowledge)”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로, 그는 특히 기업가적 지식을 의미하는데, 후자는, 정의상, −중앙 집중될 수 있고 저장될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달리−분산되어 있다.
기업가적 지식은 주관적이고, 배타적이며, 사적이다. 그것은 중앙 집중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의 각 조각은 서로 다른 개인의 마음속에, 종종 암묵적이고 모호한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도 한데, 이것은 우리가−불확실성에 직면하여 행동하고, 기회들을 알아차리며, 작동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함으로써−시행착오를 통해 창출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개인이, 자기들의 유전자들, 양육, 경험들, 그리고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독특하고, 대체할 수 없는 지식을 보유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결과, 각자는 새 기업가적 지식의 대체할 수 없는 창출자이고, 이것은 해결책들을 발견하는 데 이를 수 있다. 인구들이 증가할 때, 기업가적 지식의 전체 풀이 확장되어, 더 많은 혁신과 인간 문제들에 대한 더 나은 해결책들에 이른다.
이 해결책들이 항상 대발명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 경우, 그것들은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더 작은 발견이다. 에어비앤비(Airbnb)의 설립자들은 그저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요 회의 동안 값이 알맞은 숙박이 부족함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호텔들에 대한 더 개인적이고 값이 알맞은 대안의 대금을 기꺼이 치른다는 점을 알아차리고서, 자기들의 아파트에 있는 공기 매트리스들을 참가자들에게 임대하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슷한 발견이, 종종 눈에 띄지 않은 채, 매일 일어나지만, 그것들은 우리 번영의 기반을 형성한다.
기업가적 발견의 힘을 무시하는 영합 사고방식은 타노스(Thanos)−≪어벤져스(Avengers)≫ 영화들에서 악한−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원들이 유한하다고 믿고서, 그는 우주를 “구하기(save)” 위해 모든 생명의 반을 없애 버린다. 그렇지만, 번영 대신에, 그의 계획은 붕괴에 이르는데, 왜냐하면 사라진 모든 사람이 소비자였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지식을 가진 문제 해결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산된 지식이 심지어 가장 간단한 제품들에조차도 얼마나 많이 내장되어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한 잔의 커피를 고찰해 보자. 우리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간단하다고 가정하지만, 어떤 단일 개인도 그것을 전적으로 자기 혼자 힘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커피콩들이 (종종 브라질이나 에티오피아에서) 재배되고, 수확되며, 가공 처리되고, 전 세계로 수송되며, 볶아지고, 그리고 기술자들에 의해 설계되고 서로 다른 나라에 걸쳐 제조되는 기계들을 사용하여 끓여져야 한다. 이 과정은 수천의 개인을 포함하는데, 각각은 간단한 한 잔의 커피를 당신의 식탁에 가져오기 위해 자기들의 배타적 지식을 제공한다.
이제, 세계의 인구를 반만큼 줄이는 것을 상상해 보자. 그 결과는 ≪사람들의 아이들(Children of Men)≫에 묘사된 것과 같은 반이상향일 것인데, 거기서는 심지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조차도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더 나쁘기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발견되지 않은 혁신−의학적 새 발견들, 더 깨끗한 에너지원들, 더 효율적인 생산 방법들−이 영원히 상실될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과잉인구의 두려움은 더 넓은 실수−인간 사회들을, 추세들이 억제되지 않고 계속되고, 자원들이 새로운 해결책들 없이 소진되는, 정태 체제로 취급하는 것−의 그저 한 예일 뿐이다. 이 똑같은 오류는, 기술적이고 기업가적인 혁신을 간과하는 원유 생산 정점에서부터 기후 재난 모형들까지, 많은 실패한 최후 심판일 예측들의 근저에 있다.
되풀이해서, 역사는 인간 창의력이−그다지 크지 않건 획기적이건−항상 정태적 예측들을 앞지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줄리언 사이먼이 폴 에를리히의 과잉인구 두려움들의 가면을 벗긴 것과 똑같이, 에너지, 효율, 그리고 기술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혁신은 붕괴 예측들에 도전했다.
진정한 위협은 인구 증가나 산업 진보가 아니다−그것[진정한 위협]은 인간 창조성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중앙 계획에 호소하기보다, 우리는 인간 번영을 추진하는 기업가적 발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글쓴이) Amir Iraji
아미르 이라지는 이란 출신으로 언론, 저술, 그리고 편집에 경력을 가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이다. 스페인에 이주한 후, 헤수스 웨르타 데 소토(Jesus Huerta de Soto)의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 아래,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탐구했고, 후에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중추 저작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자유의 윤리≫와 ≪새로운 자유를 위하여≫를 번역하는 데 협동하였다. 이란에서의 경험들로 형성된 그의 독특한 시각은, 리버테리어니즘에 관한 논쟁들을 풍부하게 하고 서로 다른 문화 사이 이해를 촉진하려는, 그의 노력들을 반영한다.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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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도헌님의 댓글
김도헌 작성일
지식의 분업은 생산의 혁신을 가지고 온다.
1.사회에 흩어져 있으며 분할되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분산된 암묵적 지식에 대한 중요성을 하이에크는 이야기 했다.
2.그리고 이런 지식들은 중앙 집중적으로 모을수 없고 중앙집중화된 계획에 사용될수 없게 암묵적이다.
3.그러나 과학지식은 중앙집중화가 가능하고 중앙 계획에 활용된다.
4.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과학적 지식을 발전 시키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한다.
5.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에서 주체들이 지닌 암묵적 지식들이다.
6.왜냐하면 암묵적 지식들이 모여서 시장경제에서 가격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7.각 개인들의 가격을 통해서 독특하게 발전한 지식들이 시장경제의 지식들의 토대이다.
8.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왜 언제 그 지식을 죄충우돌과 시행착오로 자신만의 암묵적 지식으로 쌓아갈때에 늘 시장경제에서 성공할수 있는 것이다.
9.물론 실패도 한다.실패라는 지식을 통해서 성공이라는 지식을 쌓아간다.
10.시장경제에서 필수적인 것은 지식의 암묵적 성격으로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험을 통해서 녹아낸 그런 지식들이다.
11.왜 암묵적이라고 하냐면 말로는 표현할수 없지만 육체적으로 또는 감각으로 체득된 지식이기 때문이다.
김도헌 올림.


